정신없는 일상에서 드디어 여유를 되찾았다. 왜 정신이 없었냐고? 집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해외 이주를 도와주기 때문에 독일에 오기전 6개월 임시숙소로 계약한 집이 있었다.
물론 더 연장을 할 수도 있다. 근데 집을 새로 구하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기 때문에 들어갈 때는 무조건 나와야지 했었는데, 막상 집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니 연장하고 싶어졌다. 이미 편안함에 익숙해져버려서...
그래도 돈은 아껴야지..
여기에는 그런 말이 있다. '베를린에서는 집을 구하는 것보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더 쉽다.'
그리고 '너 지금부터 집 구하기 시작해야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하면서 반신반의 했지만.. 정말 맞는 말이었다.
ImmoScout24
여기서 집을 구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Immoscout24라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집주인이(또는 부동산이지만 편의상 집주인) 서비스에 집을 등록하고, 세입자들은 맘에 드는 집에 지원을 한다. 집주인은 지원한 세입자들 중 뷰잉(Viewing)을 할 사람들을 고른다. 뷰잉을 다녀온 사람들만 그 집에 살고싶다고 지원을 할 수 있고, 집주인은 그 사람들 중에서 맘에 드는 사람을 고른다.
맘에 드는 집에 지원 > 뷰잉 > 서류지원 > 합격
뷰잉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위치, 가격, 기간, 가구가 있나 엄청 많이 따졌었다. 그래서 지원 자체를 안했었는데 뷰잉 연락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는 집이 올라오면 위치만 대충 확인하고 지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을 구할 때까지 300개 정도의 집에 지원을 했고, 총 12번의 뷰잉을 다녀왔다.
뷰잉은 아주 간단하다. 집주인 혹은 부동산 사람이 정해준 시간에 정해준 위치에 가서 집을 함께 보면 된다. 여러명의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나도 처음엔 엥?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집을 본다고? 했지만 아래 사진처럼 뷰잉이 있는 집 앞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인다.
들어가면 집을 자유롭게 구경하고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면 된다. 집이 좁은 경우에는 사람들한테 낑겨서 돌아다니기 어려울 때도 있다 ㅋㅋ.
가끔 독일어만 가능한 분들도 계시는데, 이런 경우에는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지원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언어를 못하는 외국인으로 사는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지원
뷰잉을 다녀온 집에 지원하려면 여권, 3개월치 월급 명세서, 3개월치 월세 낸 기록, 집주인에게 월세를 밀리지 않고 잘 냈다는 확인서를 보내줘야 한다. 집주인이 당신을 선택했어 계약할거니까 이러한 정보들이 필요해 보내줄래? 가 아니라 집에 지원하고 싶으면 보내. 이거다. 내 여권과 월급이 투명하게 보이는 서류를 메일로 보낸다는게 너무 위험한 게 아닌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잘못된거라 생각하고 처음 뷰잉을 간 집에는 지원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이는 지극히 일반적인 절차였다. 처음엔 지원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의심하며 지원했고, 세 번째 부터는 될대로 되라지~ 하면서 메일을 보냈다. 역시 처음만 어려운 게 맞다.ㅋㅋㅋㅋ
12번의 뷰잉을 다녀오면서 이건 진짜 아닌데? 싶은 집들도 더러 있었다. 화장실에 세면대랑 샤워실만 있고 변기는 다른 화장실에 있다던지, 엄청 작은 원룸인데 월세가 터무니 없이 비싸다던지.. 이러한 집들을 제외하고 지원한 집은 총 5개.
입주 날짜를 바꿀 수 있냐고 물어봐도 답장을 해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사람을 뽑았는지,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했는지, 언제 결과가 나오는지 아무런 정보도 알려주지 않는다. 집을 구할 때 세입자는 정말 배려받지 못한다.
다른 4곳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는데, 마지막으로 지원한 집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
계약서를 받았는데 독일어로 빽빽하게 9장.. 바로 구글 번역기와 독일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 줄씩 열심히 읽으면서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들을 적어서 메일로 보냈고 크게 문제는 없었다. 한 가지 걸렸던 건, 집 키를 받기전에 보증금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보증금이 한국처럼 큰 금액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금액이기 때문에 걱정이 조금 됐다. 그래서 돌려 돌려 말해 키를 받기 전 절반, 키를 받은 직후 절반 나눠서 보내기로 타협을 봤다.
키를 넘겨 받을 때 집 상태도 같이 확인한다. 벽에 구멍이 있는지, 바닥은 괜찮은지, 창문은 괜찮은지 등등. 사진도 찍고 종이에 기록을 남기고. 열쇠도 모두 잘 열리는지 확인해보고 지하 창고도 같이 확인하고 하느라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후기
새로 구한 집은 뷰잉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감이 왔다. 뭔가 이 집이 될 것 같아 하면서. 이렇게 느낀 부분이 2가지였는데, 첫 번째로 이상한 집에 뷰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뷰잉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마침 연락을 받았을 때 멈췄던 역에서 내려야 했다. 두 번째로는 예정된 뷰잉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을 해서 부동산 아저씨와 현관에서부터 인사를 하고 1:1 프라이빗 뷰잉처럼 진행했다. 이야기도 많이했고, 뷰잉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아저씨가 창문으로 손인사도 해주셨다.
뷰잉가서 아래 선물들도 받았다. 뷰잉을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줬던 것 같은데, 작은 선물로 괜히 기분이 좋아지더라.
운이 좋게도 꽤 괜찮은 부동산 회사를 만났고, 중개인(?)도 문자 전화로 바로바로 연락이 된다. 게다가 9월 26일부터 살아서 9월 월세도 조금 냈어야 했는데, 받지 않았고 월세도 50유로정도 깎아줬다.
주방도 분리되어 있고, 크기도 매우 크고, 무엇보다 필요한 가구들도 더러 있어서 새로 사야하는 것들이 많지 않아 좋았다.
큰 가구, 가전들이 많았음에도 사소한 것들을 하나 둘 사다보니 집을 꾸미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앞으로 최소 2년은 살아야 하니 잘 지내봐야지.ㅎㅎ 홈스윗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