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vs 스페인 8강
7월 5일 금요일
독일,스페인의 8강 유로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18시 경기 시작이어서 기분좋게 퇴근하고 동료들과 오피스 미팅룸에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
버거 마이스터도 주문하고 감자튀김도 먹으면서 맛있고 재밌게 경기를 봤다.
창문 넘어로 들려오는 함성 소리는 우리를 더 재밌게 만들어줬다.
버거 마이스터를 가져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회사 앞에 사람도 엄청 많고, 회사 문이 카드를 찍어야만 열리지만 오래 열려있으니 누가 들어와도 모르겠다.
경기는 독일이 아쉽게 패배했다.
그래도 재밌었다 하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하던 자리로 돌아왔다.
사라진 것들
가방을 싸려고 보는데 분명히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북이 사라졌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축구를 본 동료들의 노트북도..
총 3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 가방도 사라졌다.
내가 안일하게 생각만 했던 일이 더 안좋은 상황으로 벌어졌다.
처음엔 장난인줄 알았다.
누가 가져갔겠지.
장난치는거겠지.
청소하시는 분이 치우셨겠지.
아무리 둘러봐도 오피스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의 물건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회사 동료들에게 모두 연락을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Security팀을 만나 분실물이 들어온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먼저 슬랙으로 회사의 Security 팀에게 연락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Critical 한 상황이라고 연락을 하니 on call인 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근처에 있으니 회사로 가겠다고.
오셔서 가장 먼저 해주신 말은 당신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니 전혀 신경쓰지 마라는 말이었다.
보안 문제 때문에 당신들의 회사 계정을 rotate할 거고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신고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 회사에 제출하면 새로운 노트북을 받을 수 있다.
그거면 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전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라는 말을 해주시며 우리를 안정시켜주셨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온라인으로도 가능했다.
막상 신고하려고 하니 죄다 독일어로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 다행히 독일어가 모국어인 동료가 함께 있었고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어려웠던 것 같다.
만약 그 동료가 없었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on call 이었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말고도 4대의 노트북이 더 사라졌다고 한다.
진짜 어느 정신나간 놈일까.
얼마나 간이 큰걸까.
내 가방은 왜가져갔을까?
신고
독일에 와서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있을줄이야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물건을 도난당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조금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경찰에 신고하다보면 잃어버린 물건을 자세하게 적는 칸이 있다.
그리고 내 가방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더듬더가며 적었다.
??
여권, 맥북 프로 14인치 M2 32GB, 고프로7, 고프로 스틱, 아이패드8, 애플펜슬
매직키보드, 필름카메라, 새로산 칼하트 가방, 나이키 볼캡
내가 잃어버린 물건들이다.
장난하냐고.. 아...
진짜 너무 속상하다.
내 개인 것만 어림잡아도 150만원 가까이 된다..
여권에 거기에 있는 사진, 동영상, 자료까지 생각하면 진짜 머리가 너무 아프다.
(휴대폰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있긴하다.)
여권도 재발급해야 하고 비자도 새로 받아야 한다.
여권 작년 12월에 만든건데.
유효기간 9년 하고도 6개월 남았는데.
가방 산지 한 달도 안됐는데..
큰 맘 먹고 7년만에 산 새 가방인데..
아이패드 대학교부터 함께하던 친구인데...
대학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가있는데...
필름카메라 한국에서부터의 내 시선들이 담겨있는데....
부모님 사진도 있는데....
고프로 브이로그를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찍고 있었는데.....
이제 막 재미가 들렸는데.....
또 웃긴건 테이블에 소니 헤드셋, 선글라스도 있었는데
그런건 쏙 빼놓고 노트북만 가져갔다.
가방도 내 가방만.. 내 가방만 가져갔다.
생각할수록 너무 속상하고 어이없다.
분명 출근할 때는 가방이 무거웠는데 퇴근하는 길에는 가방이 없다ㅋㅋ
어이가 없으면서도 착잡했다.
집에 가는길에 경찰에서 전화가 왔고,
기재한 물건들의 시리얼 넘버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야만 물건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발 찾아주세요 경찰아저씨
그리고 도둑놈 엄청 혼내주세요 제발요ㅠ
회사 노트북 시리얼 넘버는 회사로부터 받았고
아이패드 시리얼 넘버는 icloud가 연동되어 있어서 찾을 수 있었다.
배움
범인이 잡히고 내 물건들이 모두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작 2일밖에 안지났는데 내 물건들의 빈자리를 너무나도 크게 느끼고 있다.
다시 하나씩 채워나가고 싶은데..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일단 당분간 열심히 돈을 아끼면서 살아야겠다..ㅋㅋ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는 하지않고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 물건은 내가 잘 챙겨야 한다는.
비록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일지라도.
근데 너무 비싸게 배운 경험인 것 같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걸까.
나중에 후기까지 써보는걸로..